나의 20대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출근길에 서둘러 버스를 탔는데 빈자리가 없어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졸도를 한 것이다.
아마 그 당시 흔한 연탄가스 중독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에 앉아있던 청년이 나를 부축하여 자기 자리에 앉히고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목적지에서 내렸다.
청년은 따라오더니 약방에 들어가 서 박카스 등을 사 가지고 나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직장 앞까지 데려다주며 괜찮은지 걱정을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건물 다방에서 커피를 사겠다고 제의를 하였고 서로 커피를 마시며 인사를 했다.
이런 것도 인연이라며 전화번호를 원해서 나의 직장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커피값도 그가 지불하고 그 후로 몇 번 만나게 되었다.
인상은 착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나는 그냥 감사의 표시로 만나는 그 이상의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솔직히 생소한 사람이라 조심스러웠다. 두어 번 제과점에서 만날 때마다 지갑에 현찰이 무척이나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 1960년대 한국에는 외국영화가 많이 들어와서 성황을 이루었다.
쿼바디스 왕중왕 클레오파트라 닥터 지바고 싸운드오브뮤직 등 나는 많은 유명한 영화를 즐겨 보았는데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들어와 선전이 되고 있었다.
이럴 때 그에게서 전화로 영화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좋다고 하여 약속을 하고 대한 극장에 가서 표를 사려고 하니 이미 매진되었다.
겨우 어떻게 하여 두 장을 비싼 값으로 그가 샀는데 좌석이 앞줄과 뒷줄로 각기 따로였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매우 기뻐하였다.
컴컴한 영화관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나란히 않아있다가 손이라도 잡으면 어찌하나 싶어 은근히 걱정을 하였는데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영화를 마음 편히 잘 보고 우리는 늦은 밤 밖으로 나와서 걸었다.
내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하니 그는 그게 아니라며 길에 서서 택시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 늦은 밤에 그 사람과 택시를 탈 수는 없는데 하며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때마침 우리 집 방향으로 가는 북가좌동 버스가 가까이 와서 멈추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오늘 고마웠어요, 버스 타고 갈게요" 크게 소리를치고 얼른 버스에 올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실망한 듯 버스를 바라보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미안하였다....
그 후론 그의 전화를 피하고 그렇게 인연을 끊으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마음에 없는 사람과의 계속되는 만남은 부당하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