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지역에 YMCA 주관 청소년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지역의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음악 연극 체육 등 여러 가지를 배우고 발표회도 하였다.
Y라는 남학생이 항상 내 옆에 앉아서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잘생기고 친절하고 나를 웃기는 말과 행동을 하였다.
나는 조용하고 웃지 않는 아이였는데 그를 통해 웃음을 찾게 되었고 친한 친구로 지냈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집이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매우 서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의 청소년 시절의 신앙 모습은 길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의 모습이었다.
다행히 청년 시절에는 주님의 찾은 바 되어 푸른 초장과 많은 물가에 완전히 거하는 양의 모습이 되었다.
성령 충만한 목사님의 설교, 곡조 있는 기도의 찬송가, 성경 말씀 속에서 나를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고 참으로 뜨거운 눈물을 많이 흘리며 하나님을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의 생각 속엔 남자를 돌멩이로 보았다.
내 마음은 단단한 나무였고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이기도 하였다.
같이 청년부였던 K선생이 그러한 나의 마음을 변하게 했다.
그는 예쁜 나의 친구 S와 데이트를 했는데 나와 셋이서 예배 후엔 다방에 모여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친하게 지냈다.
그는 유머가 풍부하고 따뜻한 사람이며 나에게 잘해주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 나의 남자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무너지고 이성을 좋아하는 감성을 찾게 되었다.
그러는 중에 우리 교회 청년부에 L이 이사를와 등록했다.
핸섬 하고 글씨 잘 쓰고 목소리 좋고 철저한 신앙생활로 모범을 보였다.
모든 일에 너무도 성실해서 목사님의 신임을 받는 인재로서 최초로 총각 집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 당시 한국은 가난했고 최고의 청년 실업자 시대였다.
유일하게 K선생과 L선생이 좋은 직장을 갖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쟁쟁한 여자 청년들의 호감도가 높았다.
2-3년이 지났을 때 그 L선생이 내게 프러포즈를 하였다.
26년간의 방황하던 나 홀로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것이다.
나의 소박하면서도 중요한 몇 가지의 결혼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남자와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였다.
영화도 보고 하얗게 쌓인 눈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늦게까지 걷기도 하였다.
매일 퇴근 후 통행금지 12시까지 즐거운 데이트를 하였다.
서로 첫사랑이고 같은 믿음을 나누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안심되고 사랑받는 참으로 행복하고 따스했던 순수한 연애 경험을 하였다. 결혼 48년 차.